8단 자동변속기, 과연 운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 출처 : 다음 자동차
8단 자동변속기, 과연 운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자동차 제조사들 기술력의 증표, 자동변속기 다단화
자동변속기 다단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10여 년 전 내 차는 4단 자동변속기였다. 1.5리터 4기통 엔진이었었는데 당시로는 그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높은 RPM을 사용하면 엔진 소음이 많이 발생했고 수동으로 조작한다고 해도 엔진 회전수를 세밀하게 조작하기 힘들었다. 결과적으로(지금에 비하면) 연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엔진 성능을 제대로 뽑아내기 힘들었다. 지금 1.6리터 4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들은 6~7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한다. 예전에 비해 엔진 효율성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운전자가 엔진을 더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기아 8단 자동변속기
엔진이 생산한 동력을 차의 속도에 따라 필요한 회전력으로 바꿔주는 장치인 변속기는 내연기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부품이다. 만약 변속기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엔진 폭발력이 그대로 바퀴 회전력이 되니 운전자가 차의 속도를 제대로 제어하기 힘들어 진다. 또한 엔진 효율성도 극도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변속기는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도 내연기관 자동차는 모두 변속기를 달고 있다.
10여 전에 사용했던 4단 자동변속기의 역할은 각 기어에 따라 기어비를 달리해 엔진 회전수를 조율하는 역할이었다. 물론 지금의 6~7단 자동변속기도 똑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매커니즘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엔진 회전수를 4단계로 조절했지만 지금은 6~7단계로 조절한다는 뜻이다. 10여 년 동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엔진을 좀 더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초의 자동변속기로 알려진 올즈모빌. 클러치가 없는 것을 가장 큰 특진으로 광고하고 있다.
사실 자동변속기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됐다.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여러 엔지니어들이 자동변속기 개발을 했지만, 1904년 미국 보스톤의 스터드번트라는 형제가 개발한 것이 현시대의 자동변속기 구조에 가장 가까운 모태라고 볼 수 있다. 2단 기어뿐으로 기어비를 바꾸는 정도였는데, 기어가 쉽게 빠졌고 저항이 너무 커서 쉽게 마모돼 오래 사용할 수 없었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인 방법이었지만 자동차가 극히 드문 환경이어서 사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최초의 자동변속기는 1932년 두 명의 브라질 엔지니어가 개발했다. 호세 아라리페와 페르난도 레모스가 개발한 이 유압식 자동변속기는 그 성능을 인정받아 GM이 기술을 사들였고 올즈모빌(Oldsmobile)이라는 브랜드에서 ‘하이드라매틱(Hydramatic)’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클러치 조작 없이 운전대 밑에 있는 레버(지금의 칼럼식 시프트)를 1, 2단으로 밀거나 당겨서 넣는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 또한 완벽한 자동변속기는 아니지만 클러치가 자동으로 붙었다 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받았고 자동변속기 발전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GM 하이드라매틱 드라이브는 클러치가 없어 여성도 쉽게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초기 자동변속기들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드라이브 샤프트에 가해지는 압력에 따라 기계적으로 기어가 선택되는 방식이었다. 즉 드라이브 샤프트가 너무 빠르다 싶으면 시프트 업을 하고 너무 느리다 싶으면 시프트다운을 하는 아주 단순한 방식이었다. 가속페달은 변속기를 통하지 않고 바로 스로틀밸브에 전달되었기 때문에 당시 자동변속기는 엔진의 연료사용량을 컨트롤하지 않았다. 또 변속 중 시동이 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RPM을 높게 사용했다. 때문에 수동변속기에 비해 연비가 나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 세대가 타시던 자동변속기의 연비가 좋지 않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자동변속기는 꾸준하게 판매됐다. 수동변속기에 비해 조작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자동변속기들은 모두 컴퓨터를 달고 있다. 전자제어식 자동변속기(TCU: Transmission Control Unit)는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는 양과 엔진 회전수, 엔진 온도, 현재 속도 등 자동차가 굴러가며 생기는 여러 저항값을 계산해 가장 효율적인 기어 단수를 찾아 들어가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 초기 전자제어식 자동변속기는 이런 복잡한 알고리즘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오르막길이나 앞차를 추월할 때 시프트다운으로 RPM을 높이는 게 아니라 시프트업을 하는 등의 오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오류가 극히 드물다.
기아차 스팅어는 뒷바퀴굴림 전용 8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한다.
기계식 변속기는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연료효율이 확실히 좋아졌다. 낮은 RPM을 사용하고 속도와 주행환경에 따라 연료 분사량까지 계산하게 된 덕분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자동변속기의 다단화다.예전 4단자동변속기와 지금의 6단 자동변속기를 비교해보면 엔진 RPM이 많이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RPM이 낮다는 것은 엔진이 그만큼 덜 움직인다는 뜻이다. 당연히 연료사용량이 줄어들고 공해를 덜 배출한다. 엔진 소음도 줄고 수명은 더 길어진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오래 전부터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며 자동변속기 다단화에 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해서든 연료 효율성을 높이면서 배출가스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연비와 출력이 높은 좋은 엔진을 개발했는데, 엔진만으로는 높은 연료효율을 완성할 수 없다. 엔진을 컨트롤하는 변속기도 그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엔진이라도 변속기 성능이 떨어지면 그 엔진은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6단 자동변속기
다단화를 하게 되면 실사용역에서의 RPM을 낮출 수 있다. 엔진 회전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니 연비도 높일 수 있게 된다. 실례로 얼마 전 기아 쏘렌토는 동급 최초로 앞바퀴굴림 8단 자동변속기를 넣었다. 그러면서 배기량도 2.0리터에서 2.2리터로 늘렸다. 일반적으로 배기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연료 소비량이 많아진다. 하지만 신형 더 뉴 쏘렌토는 2.0리터 디젤 6단 자동변속기 모델보다 연비가 리터당 0.3킬로미터 높은 리터당 13.4킬로미터로 동급에서 연비가 가장 높다. 주행 조건에 맞춰 엔진 회전수를 더 다양하고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또한 더욱 촘촘해진 기어비 덕분에 가속성능도 향상됐고 배기량이 늘었으니 출력(202마력)과 토크(45.0kg·m)도 높아졌다. 다단화 변속기로 바꾸면서 상품성이 훨씬 더 높아진 것이다.
사실 자동변속기 다단화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브랜드가 회의적이었다. 다단화를 위한 높은 개발비용은 고스란히 자동차 가격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 다단화에 따라 변속기의 무게가 더 늘어날 것이고 복잡해진 엔지니어링 때문에 고장이라도 나면 고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을 날로 발전해 이런 단점들이 점점 없어지게 됐고 다단화는 생산 업체의 기술력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더 뉴 쏘렌토는 6단에서 8단으로 다단화하면서 연비가 좋아지고 가속성능이 향상됐다.
자동변속기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지만 8단까지 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1.6리터 작은 차에도 이미 7단 변속기가 들어가면서 4단이나 5단 자동변속기는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물론 경차는 아직도 4단 자동변속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엔 경차도 다단화된 변속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린 10단 이상의 변속기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단화가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공해 저감한다는 것이 입증됐으니 말이다.
자동변속기의 개발로 인류는 왼발과 오른손이 자동차 운전으로부터 해방됐다. 이는 단순히 운전이 편안해진 것 이상을 의미한다. 오른손이 변속기에서 운전대로 오면서 안전성은 더 높아졌고 왼발도 몸을 더 단단하게 지탱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기어 단수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수동변속기의 최대 장점이었던 연비까지 뛰어넘게 됐다. 자동변속기의 다단화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고 다단화가 자동차 제조사들의 기술력의 증표가 되고 있다. 물론 자동변속기를 직접 만드는 자동차 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자체 개발·생산한 변속기를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기술력을 지녔다는 의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진우(<모터 트렌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