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즐거움! '티코' 동호회를 가다
※ 출처 : 다음 자동차
작지만 큰 즐거움! '티코' 동호회를 가다
대우 티코(Tico)를 기억하는가? 1991년 ‘국민차’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대한민국 최초의 경차다. 직계 자손 마티즈와 스파크는 물론, 현대 아토스와 기아 모닝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2000년까지 판매했으니 가장 마지막으로 공장 문을 나선 티코도 이제 18년이 다 돼가는 고령이다.
대우국민차
도열한 티코와 동호회 회원들
요즘도 아주아주 가~끔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티코. 최근 경기도 안양 모처에 티코 수십 대가 모였다. 길거리에서 한 대만 봐도 ‘우와~ 티코다!’라고 했을 마당에, 이렇게 많은 티코를 한자리에서 보다니! 티코 동호회 T.O.C(티코 오너스 클럽)의 정기모임을 따라가보자.
T.O.C는 현재 40여 명이 가입돼 있으며, 이날은 20명 정도가 참석했다. 가장 먼저 놀랐던 점은 참가자들의 나이다. 90년대에 티코를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당시 적어도 20대였을 태고 2018년 현재는 40대가 됐을 텐데, 회원들의 면면은 30대가 가장 많다.
티코가 한창 현역이던 시절에는 운전면허 대신 학생증 밖에 없던 이들이 나중에 커서 오너가 된 경우가 많은 셈이다. 클래식이나 빈티지, 구형, 옛것이라고 하면 응당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고정관념이 상큼하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본인이 첫 주인인 경우는 없고, 다들 매물을 눈여겨보다가 데려온 중고 티코들이다. 운이 좋아 상태가 좋았던 티코부터, 거의 차를 새로 만들다시피 한 사례까지 다양하다. 모임에 등장한 티코들 모두 생산연도와 상태, 꾸밈, 색깔 등 ‘각차각색’이었다.
알록달록한 티코
건메탈 회색과 주황색이 조합된 1996년식 후기형 티코를 타고 온 36세 남동윤 씨를 만났다. 그는 2012년부터 티코와 함께했으며, 이외에도 1999년식 기아 프라이드, 1995년식 오펠 아스트라와 2009년식 랜드로버 프리렌더2를 소유하고 있다. 다 처분하고 새 차나 하나 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질문을 자주 듣지만, 본인은 지금이 더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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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윤 씨의 티코
‘최초+최소형+최저가’라는 상징성과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때문인지, 그는 티코에 가장 마음을 쏟는다. 기름만 넣고 타는 새 차가 주는 기쁨보다, 헌 차를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길에 몰고 나왔을 때 얻는 희열이 작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다른 자동차 모임도 나가봤지만, 티코 동호회만큼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없었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차였으면 화젯거리도 아니었을 작은 부품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오래된 자동차이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아닐까?
엔진회전계가 없는 계기반. 최고속도가 초기형에는 140km/h까지만 적혀 있었다
전부 12인치 휠을 낀 티코들 중 홀로 15인치를 신고 차체를 낮춘 티코도 남다른 멋을 자랑했다. 티코에 15인치는 중형 세단에 21인치 정도로 보인다. 단, 다소 떨어진 순발력은 감수할 부분. 796cc 3기통 엔진의 41마력, 6kgm는 3인치나 커진 휠을 감당하기에 차이가 컸을 터다. 낮아진 차체도 스즈키 알토의 스프링을 끼웠기 때문.
15인치 휠을 끼운 티코
티코의 기본이 된 스즈키 3세대 알토 (이미지: PAK WHEELS.COM)
원래 티코에는 엔진회전계(RPM 게이지)가 없는데 차주가 스즈키 알토에 달리던 계기반을 직접 구해서 달았다. 스즈키 3세대 알토는 대우조선(향후 ‘대우중공업’을 거쳐 오늘날 ‘대우조선해양’이 된다)에서 티코를 개발하는데 기본이 된 모델이다.
처음에는 '대우조선'에서 생산
나중에는 '대우중공업'으로 변경 엔진회전계가 생겨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리기사에게 운전을 맡겼을 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티코는 고회전용 엔진이 들어가 초반 토크가 크지 않은데, 보통 대리기사들이 습관적으로 2,500rpm에서 변속을 해 울컥거리곤 했다. 엔진회전계를 단 뒤로는 3500 넘어서 변속을 해주십사 부탁할 수 있어 부드럽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라며 웃었다.
교체한 스츠키 알토의 계기반은 회전한계가 8,000rpm부터 시작이다
새로 장착한 알토의 계기반은 레드존이 무려 8,000rpm에서 시작한다. 티코에는 요즘 차들처럼 엔진 보호를 위해 전자식으로 회전수를 제한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엔진회전계를 보며 무리한 RPM 상승을 막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브레이크도 손봤다. 패드와 캘리퍼를 바꾼 것은 아니고, 엔진룸 안에 있는 진공배력장치를 개선했다. 티코에 달려있던 진공배력장치는 용량이 부족해 브레이크 페달을 연속으로 2-3회 밟으면 딱딱해지곤 했는데, 확장탱크를 통해 해결했다.
진공배력장치 확장탱크
배터리 방전을 막기 위한 차단밸브
2005년부터 티코를 소유한 차주는 직업상 작은 주차타워를 비롯해 좁은 곳에 주차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티코만한 차가 없었다고 한다. 웬만큼 빠듯한 주차 공간도 OK. 티코의 전체 길이가 3340mm, 롤스로이스 팬텀의 휠베이스가 3552mm니까 팬텀 바퀴 사이에 티코가 오롯이 들어가는 셈이다.
편의장비를 따지고 들자면 오늘날 신차들과 비교불가다. 창문도 돌려서 여닫는 방식이니 말 다했다. 하지만, 반대쪽도 오른손만 뻗으면 충분히 조작할 수 있다며 웃는 차주를 보니 편함과 불편함도 기준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히 선 스파크를 대형차로 보이게 하는 티코의 크기
반대쪽 창도 팔만 뻗으면 돌려서 여닫을 수 있다. 전동식도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씨도 티코 차주로서 자리를 함께했다. 현재 티코 외에도 제네시스 쿠페를 소유한 그는 전륜구동, 카뷰레터, 자연흡기가 조합된 티코와 후륜구동, 직분사, 터보가 들어간 제네시스를 옮겨타며 차이를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전했다.
이동희 씨의 티코
오랜 자동차 기자 경험으로 ‘안 타본 차 없이 다 타본’ 그는 더 이상 비싼 차나 슈퍼카에 대한 환상이 없다. 정말 자동차를 잘 알고, 좋아하고, 경험이 풍부한 이들일수록 남의 눈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진짜 타고 싶은 차를 탄다. 이동희 칼럼니스트와 티코처럼 독특한 차를 소유한 전문가가 여럿이다.
완전 수동 5단
최신 엔진과 비교하면 전자장비가 훨씬 적다
겨울에는 레버를 올려 배기관쪽 열을 흡기쪽으로 끌어온다
이날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경품 추첨이었다. 회원들이 삼삼오오 가지고 나온 희귀 아이템들을 나눴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물건은 티코 오리지널 스티커. 자신의 티코가 좀 더 이상형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경쟁이 치열했다.
모터트랜드 김형준 편집장은 올해 5월호 프리우스C 기사에서 “물론 어떤 차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 될 것 없다”라고 끝맺었다. 이날 모임에 나온 회원들이야말로 티코를 가슴으로 품은 사람들이 아닐까? 티코가 구식을 넘어 클래식이 되는 그날까지 이들의 티코 사랑이 계속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