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다음 자동차
좋은 사람·좋은 차..누구나 프라이드에 얽힌 사연 하나쯤 있다
마음 속 차고에 고이 모셔둔 기아차 프라이드
[내가 사랑한 올드카] 몇 년 전에 길에서 기아 프라이드를 봤다. 신형 아닌 1세대 기아 프라이드. 1987년 출시해 새 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단종된 옛 차.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하지만 차량 교체 주기가 패션 유행처럼 짧은 한국이기에 한층 세월이 느껴졌다. 해서 더 오래 바라봤다. 도로엔 선이 어지럽고 과격한 신차가 가득했다. 그 속에서 양은 도시락 같은 프라이드는 달라 보였다. 달라 보이기에 참신했다. ‘올드’라는 명칭에 적합하진 않아도, 심정적으로 올드카다웠다.
시선을 사로잡은 프라이드는 그냥 오래된 자동차로 보이지 않았다. 리스토어에 조예가 없어도 특별히 관리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헤드램프와 그릴도 프라이드와 조금 달랐다. 지붕에는 짐도 수납하게 렉도 달렸다. 프라이드이면서 프라이드 같지 않았다. 차주가 오랫동안 타왔다기보다 새롭게 고쳐서 타는 듯했다. 굳이, 시간과 공을 들여서. 중요한 지점이다. 굳이, 그렇게 타는 사람과 굳이, 그렇게 탈 수 있는 차량은 한정적이었으니까.
그때부터 1세대 프라이드를 눈여겨봤다. 기교 없이 직선으로만 그린 디자인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최신 자동차에선 느끼기 힘든 단순한 아름다움이 담겼다. 신차에선 (법규와 연비 등 여러 제약 때문에) 구현하기 힘든 각이 즐비했다. 무심하게 툭, 꺾인 각을 보노라니 어떤 화려한 콘셉트카보다 멋있었다. 물론 간결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이 작용했다. 더불어 지나가버린 것에 담긴 아련함도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프라이드가 다가왔다.
한동안 중고 사이트에서 프라이드를 검색하는 게 습관이었다. 개체 수가 은근히 많았다. 1990년대 후반 매물들이 세월과 싸우고 있었다. 다만 생각보다 가격이 높았다. 리스토어 모델로 각광받고 나서 몸값이 올랐다. 이곳저곳 매만진 매물은 가격이 더 높았다. 프라이드라고 불렀지만 프라이드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끌렸다고 하면 모순일까.
순정대로 잘 복원한 건 소박한 맛이 있었다. 자기 개성을 담아 새로 꾸민 건 발랄한 재미가 있었다. 둘 다 1세대 프라이드를, 지금 즐기는 법이다. 새 가치가 파생된 셈이다. 프라이드가 특별한 모델이 아니어서 더 의미 있다. 프라이드는 저렴한 소형차였다. 당시 광고에서 ‘좋은 생활, 좋은 차’라고 소박하게 명명했다. 고성능보다는 내구성을, 재미보다는 생활을 내세웠다. 지금이라 해서 달라지진 않았다. 대신 시간과 개성이 추가로 담겼다. 비슷한 바탕에 다른 속성이 더해져 새로운 존재로 변화했다. 올드카로 살아남을 조건을 충족했달까.
내가 중고 프라이드를 검색한 건 단지 레트로 흐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추억을 복기하게 하는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이지만, 나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닐 거다. 특별하지 않은 차라서 누구나 사연이 얽힐 확률이 높다. 그럴 때 특별하지 않은 차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오래된 자동차를 복원하고 유지하려면 동력이 필요하다. 이제 더 각광받는 각진 디자인이 우선하지만, 더불어 옛 기억과 동조할 사연도 중요하다. 감정이 움직일 때 거세게 끌리는 법이니까. 프라이드는 내게 그런 자동차다. 누군가에게도 그럴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사연이 거창하진 않다. 그냥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사연이다. 그러니까 프라이드는 내가 운전한 첫 차였다. 운전면허학원 연습용 자동차를 제외하면 그렇다. 어느 날 아버지가 중고차로 프라이드를 몰고 왔다. 그러니까 프라이드는 흔히 말하는 우리집 자동차였다. 몇 년도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1980년대 후반 같기도 하고 1990년대 초반 같기도 한, 아득한 옛날이었다. 프라이드는 긴 시간 우리집 자동차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암묵적으로) 주로 내가 타는 차가 됐다. 나름대로 프라이드 덕분에 자동차 타는 복학생 반열에 오른 거다.
물론 낡을 대로 낡은 프라이드였다. 시선 집중시킨 스포츠카도 아닌, 평범한 통학용 자동차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 평범하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그 점이 중고 사이트에서 1세대 프라이드를 찾게 한 이유였으려나. 물론 아직 프라이드를 구입하진 않았다. 앞으로도 구입하지 않을 가망성이 높다. 하지만 언젠가 더 개체 수 적어지기 전에 구입할지도 모른다. 마음 한 구석 프라이드의 차고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김종훈 칼럼니스트 : 남성지 <아레나 옴므 플러스>에서 자동차를 담당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남자가 좋아할 만한 다양한 것들에 관해 글을 써왔다. 남자와 문화라는 관점으로 자동차를 다각도로 바라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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